동네와 동네를 연결하는 데 지나지 않았던 ‘길’이라는 이름의 회색빛 콘크리트 덩어리.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며 수명을 다한 그 ‘흉물’ 위에 초록빛 자연과 색색의 조명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무와 함께 다시 살아난 길 위를 사람들이 걷기 시작하자 ‘흉물’은 도시의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 서울로 7017 (이미지 출처 : 서울시 제공)
서울역 고가를 산책로로 재조성한 ‘서울로 7017’ 프로젝트. 1970년 완공되어 노후화로 위험했던 찻길 서울역 고가가 2017년 17개의 사람길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나의 도시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만나 질적인 가치를 높이는 공공디자인의 사례입니다.
미국 뉴욕을 찾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가보는 필수코스 중 하나가 된 핫플레이스, 하이라인 파크도 공공디자인이 접목된 사례입니다. 버려져 있던 화물열차 철로를 허물어버리지 않고 공원으로 재생시킨 이 하이라인 파크는 뉴요커들이 센트럴파크 다음으로 사랑하는 공원이자 산책로로 단숨에 떠올랐습니다. 버려졌던 화물열차 철로가 뉴욕을 대표하는 공공디자인의 정수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공공디자인은 이처럼 한 지역의 시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공의 공간 혹은 시설을 아름다우면서도 기능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공간이나 시설로 만들어내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공공디자인의 대상은 공원이나 광장, 하수도 시설, 학교와 같은 넓은 건축물과 공간은 물론 교통 표지판이나 자전거 보관대, 음수대처럼 아주 작은 시설물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어쩌면 다양하다는 말로는 그 범위를 나타내기에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 이외의 모든 도시 내 공간은 공공디자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뉴욕의 스트리트 아트로 유명한 그라피티 아트는 ‘혼돈 속 질서를 부여한다’는 의미를 지닌 뉴욕의 상징이 되면서 공공디자인의 사례로 종종 언급되기도 합니다.
▲ 스페인 마드리드 헤타페의 우산 거리
사실, 선진국에서는 공공디자인이 도시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요. 도시 전체의 미적, 기능적인 가치를 향상하는 것은 물론 시민들의 삶의 질적 가치까지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프랑스 파리의 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 센터입니다.
미국에 MoMA가 있다면 런던에는 테이트 모던이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메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테이트 모던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대표적인 공공디자인 작품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이트 모던은 과거 공장과 물류창고, 발전소 등이 즐비했던 전통적인 공장 지대이자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던 사우스 워크(South Walk)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심지어 1981년 문을 닫은 화력발전소 건물을 리모델링했죠.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개관한 것이 지난 2000년이니, 무려 20여 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흉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 것입니다.
테이트 모던이 공공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이유는 단순히 건물 하나를 재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거대한 건물이 흉물로 방치되면서 주변 지역은 동반 슬럼화의 길을 걸었는데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들어서며 이 지역은, 런더너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매년 500여만 명이 찾는 런던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건물이 살아난 것이 아니라 지역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처럼 도시가 예술적, 문화적 요소를 입으며 가치를 높이고 있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그야말로 ‘공공디자인의 교본’으로 불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입니다.
파리의 수많은 유명 건축물들 사이에서 당당히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로 손꼽히는 퐁피두 센터는 무려 30여 년 전에 세워졌지만, 여전히 ‘첨단 건축물’, ‘공공디자인의 대표 사례’라는 수식어를 지니고 있습니다.
퐁피두 센터는 외관부터 실내 공간 배치, 작은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공공에 다가서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심지어 건물 배관, 철근, 엘리베이터 등 기존 건물에 숨겨져 있던 기능적 설비들을 과감히 외부로 드러내는 동시에 기능별로 색을 입혀 그 자체를 예술 작품의 하나로 디자인했습니다. 이를 통해 나이와 종교, 이념, 인종 등을 초월해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퐁피두 센터의 정체성이 확립되었죠.
센터 내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와 소재의 사인보드, 내부 사인체계는 그 자체로 ‘공공디자인’의 교본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림과 색 등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활용해 누가 보더라도 분명하게, 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기 때문입니다.
공공디자인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또 있습니다. 바로, 하루 중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입니다. 시민은 물론 관광객도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이 바로 지하철인데요. 그래서 많은 도시가 지하철 역사에 예술을 접목하거나 표지판, 노선도 등에 공공디자인을 적용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스웨덴 스톡홀름입니다.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은 이 장소는 바로 스톡홀름의 지하철로, 세계에서 가장 긴 예술 전시장으로 불립니다. 스톡홀름은 1950년대부터 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아트 인 더 메트로(Art in the Metro)’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공공의 공간에 예술을 접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지하철 공공디자인을 통해 도시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도 무한한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이죠.
지하철역에서 표를 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부터 보이는 광경은 마치 동굴 속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공공디자인이 지하철에 적용된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런던 지하철 ‘underground’입니다. 런던 지하철의 공공디자인은 세계 디자인사에 길이 남을 기능성과 심미성을 자랑하고 있는데요. 특히 빨간색 동그라미 안을 가로지르는 파란 띠 모양의 지하철역 표지판이자 언더그라운드의 로고는 영국의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냅니다.
매우 단순하지만, 어디서나 눈에 띄는 세련되고 명료한 디자인 덕분에 누가 보더라도 지하철역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미적인 기능까지 지니고 있는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로고는 지하철 공공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대표 사례로 이야기되곤 합니다.
홍콩 지하철도 대중교통 공공디자인의 대표 사례 중 하나입니다. 특히, 지하철을 표현하는 픽토그램이 유명한데요. 픽토그램이란 사물이나 시설물 등을 사람들이 빠르고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 상징문자입니다. 홍콩 지하철 픽토그램은 열차의 전면부와 레일의 모습을 형상화해 귀여우면서도 단순하고, 그러면서도 누구나 지하철 표시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또한, 지하철을 가리키는 표지판은 화살표 방향으로 사람의 걷는 모습이 바뀝니다. 세세한 부분이지만, 공공디자인의 접목을 위해 고심한 흔적을 느낄 수 있죠.
이렇게 공공디자인을 통해 도시의 질적 가치를 향상하고자 하는 시도는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서울로 7017이 대표적이죠. 눈에 띄는 사례는 또 있는데요. 많은 사람이 꺼리는 대표적 혐오시설 중 하나인 하수처리장이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태어난 아트앤에코큐브 프로젝트입니다.
▲ 시흥 하수처리장에 자리 잡은 보일러 카페 (이미지 출처 : 시흥시 제공)
이 프로젝트는 시흥시 정왕동에 자리 잡고 있던 하수처리장, 맑은물관리센터를 자연 친화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요. 하수처리 시설을 전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와 하수 처리 견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설 노후화 등으로 주민들의 각종 민원의 대상이 되던 혐오시설이 새로운 가치를 지닌 문화시설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죠.
▲ 쓰레기장에서 젊은 열정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동대문 옥상낙원 (이미지 출처 : 동대문 옥상낙원 DRP 페이스북 제공)
동대문 신발 도매상가 옥상에 자리한 DRP(Dongdadmoon Rooftop Paradise), 동대문 옥상낙원도 대표적인 공공디자인 적용 사례입니다. 이곳은 원래 25톤에 달하는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던 곳인데요. 다양한 청년 예술가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재정비해 새로운 문화 공유의 플랫폼으로 공간을 탈바꿈했습니다.
이곳을 색다른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예술가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유물을 전시하거나 농작물을 키우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워크숍, 작가와의 대화를 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2016년에는 ‘201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기도 했죠.
지금까지 예술과 만나 도시의 디자인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공공디자인, 또 시민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디자인된 공공디자인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수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디자인의 힘은 단순히 아름다운 시설과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질적 가치와 시민의 삶을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느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공공디자인은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현대로템도 국가 기간 교통망을 구축하고 국민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공익적 책임을 맡은 기업으로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가 더욱 아름다운 도시, 더욱 많은 시민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로 거듭나게 되기를 기대하며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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