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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칼럼] 저는 현대로템학교 2학년 8반 학생입니다

어느새 2018년도 절반을 넘어서 본격적인 하반기 레이스에 돌입했습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많은 일이 있었던 만큼 눈 깜빡 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가 버렸는데요. 이는 직장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듯싶습니다. 하루하루 우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높은 산도 한달음에 올라 온 듯 ‘벌써 이만큼 왔나’,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감회에 젖는 순간이 옵니다. 28년을 하루처럼 성실하게 발걸음을 옮긴 사람, 어느덧 뒤돌아보니 발걸음 걸음마다 아름드리 뿌리 깊은 나무가 자라왔음을 확인하는 한 사람. 오늘 현대로템 임직원 칼럼의 주인공은 창원공장 차체생산팀 김장호 부장입니다.


첫눈에 반하다, 현대로템

최근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청년층의 취업난이 장기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걱정스러운 마음과 함께 제 자신이 28년 전 사회 진출을 할 때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 또한 1990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어떻게 하면 사회 진출의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을까’ 고민이 컸습니다.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평생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때 대학 졸업반 학생을 대상으로 당시 현대정공(현대로템의 전신) 창원공장 취업설명회가 열렸고, 그 기회를 통해 창원공장에 처음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공장의 모습에 저는 첫 눈에 반해버렸습니다. 당시 88전차와 BK117 헬리콥터 생산 과정을 견학했는데, 모든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압도적이었습니다. 어디 한 군데 삐걱거림조차 없이 손발을 척척 맞춰 거대한 생산 라인을 돌리고 있는 현대로템인의 모습은 너무나 부럽고 닮고 싶은 모습이었죠.

한눈에 반해 버린 마음을 품은 채 저는 1990년 10월 현대정공(현재 현대로템)에 입사하여 처음 차체생산팀에서 철도차량 차체 기계단품 제작관리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긴장과 설렘, 그리고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창원공장으로 첫 출근하던 제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에게 처음 느낀 경이로움을 안겨준 현대로템 생산의 현장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 함께할 수 있음에 자랑스러웠던 기억입니다.


모두 함께 손길을 모아 하나씩 쌓아 올린 우리의 역사

1990년대 초반, 당시 현대로템은 국내 철도차량 자체 생산 외에도 일본 철도차량 제작사에서 수주한 물량을 하청 생산했습니다. 아직은 철도차량 생산 물량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기계단품부터 일일이 모두 제작하여 차체를 만들었습니다.


▲2006년 독일 이노트랜스(INNOTRANS) 국제철도박람회에 참석한 현대로템 임직원이 한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뒷줄 중앙이 김장호 부장.

한편 새로운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끊이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스테인리스 차량이 처음 만들어지던 때고, 1994년 대전 엑스포에 소개하기 위한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녁 9시가 넘도록 연장근무는 일상적이었고 철야근무도 잦은 편이었습니다. 밤새워 생산과 연구를 거듭하다 자정 무렵 야식을 먹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저 또한 종합생산관리팀, 철차생산관리팀 등 보직을 바꾸어 가며 회사 안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철도차량에 대한 지식도 쌓이고 목표 의식도 커졌습니다. 모두 함께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향해 달려가던 시절. 못 한다는 말, 안 한다, 안 되겠다는 말은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해 보겠다, 할 수 있다, 하겠다는 말을 먼저 했습니다. ‘되는지 안 되는지 일단 해 봐야 알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일에 몰두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 젊은 사람들이 보기엔 미련해 보이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가성비’가 시대의 화두인 요즘이니까요. 그렇지만 당시 우리가 품고 있었던 무모할 정도의 열정과 행동력은 가성비 대신 ‘가심(心)비’를 채워 주었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마음의 만족도가 채워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의 신조어 ‘가심비’, 당시 현대로템인의 열정과 노력은 우리들의 자부심을 채워 주는 가심비 최고의 행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처럼 거듭된 도전을 통해 세계 일류로 나아가는 철도차량 제작 기술력이 축적되고 현대로템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은 물론입니다.


어두운 새벽길을 쉼 없이 걸어가야 비로소 아침이 온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회사 현대로템의 전성기는 프랑스 알스톰사와 협업하며 고속철도차량을 생산하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기본 설계도면을 도입해 연구ᆞ생산하던 날들을 지나, 우리의 자체 설계 능력이 축적되어 우리 힘으로 고속철도차량을 만들 수 있게 된 시기죠. 해당 업무 담당자들이 프랑스 알스톰사로 연수를 다녀오고, 알스톰 기술진이 창원공장에 상주하며 함께 협업을 하는 가운데 우리의 기술력은 몇 배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우리의 축적된 기술력으로 인도 현지업체와 함께 생산도 하는 등 해외 진출도 시작된 때이기도 합니다.


▲2011년 미국 필라델피아 공장 생산파트 현채인 직원들 및 현대로템 임직원들과 함께. 사진 아랫줄 중앙이 김장호 부장.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녀를 키울 때, 아이가 부쩍 운동능력이 좋아지는 순간과 비슷한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잘 못 걷고 자꾸 넘어지던 아이가 어느 시점을 지나면 그간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걷기는 물론 달리기, 자전거타기도 쑥쑥 잘 해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우리의 기술 성장도 그와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간의 노력과 연구가 헛되지 않게, 어느 기점을 넘어서자 기술력이 쑥쑥 성장하고 고속전철 제작기술 등 생산 역량이 부쩍 자라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 밤을 지나 아침이 왔다고 느끼기엔 아직도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전성기 이후 찾아온 수주 절벽, 물량 감소가 이어지며 많은 동료들이 현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며 함께 성장해 온 동료들을 떠나 보내는 마음은 참담했습니다. 꽤나 많이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어둡기만 한 이 시기를, 얼마나 더 견뎌야 해가 뜨고 아침이 올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기를 묵묵히 견뎌내니 다시금 세계 시장에서 많은 수주 물량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회사를 떠나야만 했던 로템인들도 회사 안팎에서 협력관계를 맺으며 함께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 회사의 성장과 업그레이드 또한 더욱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시장 진출 초기의 고난은 훗날의 노하우와 실력으로

현대로템은 2000년대 중반 미국 필라델피아 SEPTA 전동차 생산을 미국 현지에서 진행하며 미국시장 진출에 나섰습니다. 저 또한 미국 진출 원년 멤버로 미국 공장에서 철도차량 생산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처음은 뭐든지 다 힘들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코리안 스타일’과 ‘아메리칸 스타일’이 충돌하는 현장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 미국에서 생산을 할 때, 창원공장에서 했던 것처럼 쉬는 날 없이 죽기살기로 매달렸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당시 함께 일한 동료들이라면 누구나 필라델피아 SEPTA 전동차 프로젝트를 ‘고난의 시기’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2010년 필라델피아 SEPTA 전동차 1호 차체 완성 후 공장 누수시험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기념사진. 사진 뒷줄 오른쪽이 김장호 부장.

하지만 이와 같은 혹독한 시행착오 끝에 우리에게도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첫째 아이 때는 시행착오와 아쉬움이 많지만 둘째부터는 여유와 노하우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이후 보스톤 MBTA 2층객차 라인 안정화를 이루면서 미국에서의 본격 생산이 이루어졌습니다. 덴버 DTS 전동차를 제작하면서는 현지 납기일정 준수와 품질에 대해 발주처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고, 뒤이어 다시 필라델피아의 SEPTA가 발주한 개조 차량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덴버 전동차 프로젝트를 수행한 만큼 필라델피아 전동차 프로젝트를 잘 수행했더라면 미국시장에서 더 많은 수주, 더 좋은 성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듭니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둘째를 키우며 첫째에게 못해준 것이 많아 아쉽지만 첫째를 다시 낳아 키울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셋째를 낳는 길을 선택하기도 하죠. 첫째 때의 아쉬움, 둘째 때의 노하우를 담아 아이를 키울 수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현대로템은 세계 곳곳 더 많은 나라의 철도사업에 진출해 수주를 거듭하며 처음의 아쉬움을 달래고 두 번째, 세 번째 이어지며 축적된 노하우를 아낌없이 선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면서 느낀 보람과 경이로움이 나의 원동력

올해로 철도차량 생산업무를 28년째 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저는 현장에서 일하는 순간순간 보람과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물론 더러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새삼스레 제 일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생깁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SEPTA 전동차 제작 당시, 철도차량을 만들고, 출고시키고, 시험운전하는 일은 제가 회사 입사 이래 계속 해 오던 일상적 업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철도차량을 한 번도 만들어 보지 않았던 미국 현지채용 직원들(현채인)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전 경력은 택시기사, 요리사, 주택수리공 등 다양했으나 철도차량 관련 업무를 해 본 적 없던 이들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차량 제작을 완료하고 처음으로 전원을 넣고 자체 기동을 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철도차량에 불이 밝혀지고 엔진이 돌아가는 순간, 공장 내부의 모든 생산자들이 ‘와!’하고 한 목소리로 탄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놀라워했습니다. 그 순간 저 또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상적인 업무였던 철도차량 생산 업무, 하지만 누군가에겐 난생 처음 느껴보는 성취감이겠지요.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사회 초년병 시절, 선배들과 함께 야근과 철야를 불사하며 생산한 철도차량에 처음으로 전원을 인가하던 순간, 그때 느꼈던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어느새 일상적 업무 속에 묻혀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초심이 주는 감동과 늘 처음 같은 설렘을 다시 회복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계기가 됐지요.


▲2010년 12월 미국 필라델피아 공장에서 SEPTA 전동차 첫 출고를 기념하며 당시 업무를 수행한 직원들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아랫줄 중앙이 김장호 부장.

필라델피아 전동차를 만든 직원들은 ‘이 차에 우리 가족이 탈 거다’라며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차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직원들의 모습에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이후 직원 가족을 공장에 초대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족들 또한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한 것은 물론입니다.


현대로템학교 2학년 8반 학생은 여전히 ‘성장 중’

오늘도 변함없이 회사에서 맡은 바 업무를 성실히 해내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배우며, 웃음과 공감을 나누는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저는 우리 회사를 ‘학교’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현대로템’이라는 학교에 다니는 2학년 8반 학생이라고 생각하곤 하죠.

제가 처음 입사했던 때와 비교해 요즘 우리 회사의 성장세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외형적 성장은 물론 기술적 능력, 생산능력 또한 매우 향상되었습니다. 학교가 성장하고 학생 수가 많아지고 배울 수 있는 과목이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명문’이라는 자랑스러운 별칭을 얻듯, ‘글로벌 일류’라는 우리 회사의 명성이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장세를 계속하여 이어가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고객이 어떠한 요구를 하더라도 현대로템의 고유 모델로 그 요구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뛰어난 기술력에 바탕한 ‘엔지니어링이 강한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수한 엔지니어들을 육성하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지속 발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로템인들은 현대로템학교의 동문입니다. 여기엔 갓 입학해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철도차량 제작기술을 배워 나가는 후배도 있고,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돕고 이끄는 선배들도 있습니다. 선배와 후배, 동료들이 주고받는 것은 단지 철도차량 제작기술만은 아닙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열정과 자신감, 두려움을 이기고 문제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고받습니다. 어려움에 부딪치면 서로 격려하며 나아가고, 성취의 순간에는 함께 기뻐하며 서로를 치하합니다. 우리는 회사에서 철도차량 기술을 배움과 동시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그리고 협력이란 어떤 것인가를 배웁니다.

현대로템학교 2학년 8반 학생인 저는 변함 없이 오늘도 배우는 자세로 현장을 지킵니다. 저에게 철도차량 기술뿐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쳐 준 이곳, 창립 41주년을 맞은 현대로템의 계속되는 발전과 모든 현대로템인의 성장을 기원합니다.


글_ 김장호 부장(현대로템 창원공장 차체생산팀) 올해로 28년째 현대로템에 재직 중인 김장호 부장은 철도차량 생산분야의 고참으로 미국공장 설립 원년멤버로서 미국 철도차량 생산 뿐 아니라 다양한 철도차량 생산을 책임져 온 현대로템의 산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