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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철도차량의 경쟁력과 안전 저해하는 낮은 예가의 폐해

Rotem Inside

by 현대로템 2018. 12. 3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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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사업의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노력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생활과 안전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내에서 하루 평균 800만 명 가까이 이용하는 전철과 지하철은 현재 낮은 예가로 인해 차량 공급에 차질을 빚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현대로템 블로그의 2018년 마지막 이슈진단에서는 철도 차량 구매 입찰에서 발주처의 낮은 예가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낮은 철도차량 예가의 맹점

국내 지자체 및 공공기관에서 철도차량 구매 입찰을 할 때에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1단계 기술평가로 업체를 선별한 후, 2단계에서 최저가격을 투찰한 업체가 최종 낙찰이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발주처는 ‘예가’를 정해놓고 입찰 공고를 하게 됩니다.

예정가격(이하 ‘예가’)이란 발주처가 기존 계약실례가, 물가조사 등 미리 시장조사를 통해 용역에 필요한 가격의 상한선을 미리 정한 것을 뜻합니다. 발주처가 차량 구매입찰을 공고하면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예가에 맞추어 차량 가격을 투찰해야 합니다. 1단계 기술평가를 통해 자격 미달 업체를 가려낸 후 2단계에서 가격 평가를 하여 최종 선정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 업체 선정 기준은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를 우선으로 합니다. 차량제작사 입장에서는 사양의 고급화, 물가인상 등 예가를 초과하는 가격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저가 입찰 제도 안에서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예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작사들은 수주를 위해 무조건 가격을 낮추는 출혈 경쟁과 적자 수주를 지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낮은 예가로 인한 문제는 비단 철도 업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일례로 2015년 서울대병원의 연간소요 의약품 공급 입찰 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낮은 예가 때문에 의약품 공급사들이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의약품 유통업체들은 저가 투찰로 출혈경쟁을 하느니 수익성 확보를 위해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서울대병원은 환자들에게 의약품을 공급하는데 큰 차질을 빚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아픈 환자들이고, 나아가 국민의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가 이하 낙찰은 기본, 심지어 예가는 하락세?

현재 국내 철도차량 제작사는 3사 경쟁체제 하에 수주를 하고 있습니다. 2018년 7월 현대로템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진접선 전동차 50량 구매 사업을 발주처가 제시한 예가 대비 63.2%인 439억 원에 수주했습니다. 같은 달 수주한 서울교통공사 2호선 전동차 214량 구매 사업 역시 예가 대비 73.8%의 가격으로 낙찰받은 상황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철도차량 제작사들이 경쟁체제 하에서 무리하게 수주를 하다 보니 시장가격이 낮아져 발주처의 예가 역시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는 점입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률은 5%인데 비해, 지난 2018년 9월 발주한 부산 1호선 전동차의 예가는 2013년 최초 차량 발주 대비 예가가 오히려 37.2%나 하락했습니다.


과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시절 국내 대기업 3사가 한정된 국내 물량으로 지나친 출혈경쟁을 벌이자 정부주도의 ‘빅딜’을 통해 국내 철도차량 제작사를 1개사로 통합했던 이유도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낙찰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국내 철도시장은 한정된 물량은 물론, 예가까지 낮아져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3사 통합 이전보다 더욱 안 좋은 환경으로 퇴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업체 간 출혈경쟁, 적자수주를 부추기는 낮은 예가는 아래와 같은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수한 기술력의 국내 철도차량 제작사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차량 예가가 계속 낮아진다면 제작사는 점차 국내 철도사업 입찰에 참여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결국은 시민의 발이 되는 철도차량 공급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해외 여행객들이 한국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뛰어난 국내 전철과 지하철 환경입니다. 지하철 종주국이라는 영국, 촘촘한 철도망을 자랑하는 일본 관광객들 역시 한국의 전철과 지하철을 단연 최고로 여기죠. 하지만 이렇게 계속 예가가 낮아진다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차량운영을 안정화하는데 사용되어야 할 비용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차량의 품질과 경쟁력은 낮아져 대한민국의 선진적인 철도 환경이 도태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입니다.

실력이 우수한 업체가 최소한의 비용으로 필요한 용역을 공급하는 것이 최선은 맞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이라는 최우선의 가치를 담보로 하는 철도사업이기에,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낮은 예가만 고집하는 것은 결국 차량의 품질에도 악영향을 끼쳐 사회적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고, 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철도차량을 제작하는 데에는 합리적인 비용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정상적으로 낮아진 철도차량 예가를 정상화하여 차량제작사가 더욱 국민의 안전과 편의 증진에 도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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